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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홍수 리뷰(AI 설정, 모성애, 재난연출)

by mongle030 2026. 2. 25.

 

대홍수 포스터

 


 

"재난 영화에서 물에 빠지는 장면, 당신은 숨을 참을 수 있습니까?" 저는 어릴 때 물에 빠졌던 경험이 있습니다. 발이 닿지 않는 깊은 곳으로 쑥 빠지는 순간, 세상의 모든 소리가 차단되고 '웅-' 하는 물소리만 들리던 그 정적. 그때 이후로 재난 영화를 볼 때마다 남들보다 더 숨이 막히는 것 같습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대홍수'는 그런 제게 묘한 기대감을 안겨줬습니다. 김다미와 박수라는 믿을 만한 배우들, 그리고 '더 테러 라이브'로 화제를 모았던 김병우 감독. 하지만 108분의 러닝타임이 끝나고 나서 제가 느낀 건 기대와는 사뭇 다른 감정이었습니다.

 

초반 재난 연출이 주는 어색한 긴장감

대홍수는 소행성 충돌로 인한 빙하 해빙이라는 설정으로 시작합니다. 3층 아파트에 살던 엄마와 아들이 차오르는 물을 피해 탈출하는 과정이 초반부의 핵심입니다. 저는 이 장면을 보면서 계속 고개를 갸우뚱했습니다. 급박한 상황이라고 말은 하는데, 정작 등장인물들의 행동은 전혀 급해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직접 물에 빠졌던 경험을 떠올려보면, 그 순간만큼은 세상의 모든 것이 멈춘 것처럼 느껴집니다. 숨을 참아야 한다는 걸 머리로는 아는데, 몸은 본능적으로 공기를 찾으려 발버둥 칩니다. 그런데 영화 속 인물들은 물이 차오르는 와중에도 통화를 하고, 아이는 화장실을 찾아 들어가고, 엄마는 밖에서 여유롭게 기다립니다. 솔직히 저 같으면 그 자리에서라도 일을 봤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비상 계단이 막혀 있다는 설정도 억지스러웠습니다. 반대편으로 가니 아무도 없다는 전개는 마치 김다미만 천재고 나머지는 바보라는 인상을 줬습니다. 그 길마저 물건들로 막혀 있어서 위험한 우회로를 택해야 하는 상황도 너무 영화적이었습니다. 재난 상황의 긴박함보다는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위기처럼 느껴졌다는 게 솔직한 제 감상입니다.

 

AI 설정과 모성애의 어색한 결합

중반부에 접어들면서 영화는 큰 반전을 던집니다. 사실 이 대홍수는 실제 상황이 아니라 시뮬레이션이었고, 아들은 AI 실험체였으며, 엄마는 '이모션 엔진'이라는 감정 시스템을 개발하는 연구원이었다는 설정입니다. 저는 이 지점에서 영화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 혼란스러웠습니다.

이모션 엔진을 완성하기 위해 김다미가 시뮬레이션 속에서 수만 번의 선택을 반복하는 과정이 후반부의 주된 내용입니다. 갇힌 아이를 구하고, 임산부를 돕고, 불량배들과 맞서는 등의 상황들이 계속 반복됩니다. 문제는 이 과정이 전혀 긴장감 있게 다가오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제가 느끼기에 가장 큰 문제는 이모션 엔진이 정확히 어떤 조건으로 완성되는지에 대한 설명이 부족했다는 겁니다. 아이를 살리면 된다는 건 알겠는데, 왜 그게 엄마의 감정 완성과 연결되는지 납득이 가지 않았습니다. SF 장르라면 최소한의 설득력 있는 룰을 제시해야 하는데, 영화는 그냥 "그렇게 하세요"라고만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시뮬레이션이 무한 반복된다는 설정도 긴장감을 떨어뜨렸습니다. 실패해도 다시 하면 되니까 선택의 무게감이 사라진 겁니다. 제가 게임을 할 때도 무한 세이브가 가능하면 긴장이 풀리는 것처럼, 이 영화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임산부를 돕든 말든, 아이를 구하든 말든, 어차피 다음에 또 할 수 있다는 걸 관객들도 알고 있으니까요.

배우들의 연기는 좋았지만 캐릭터 활용은 아쉬웠다

김다미와 박해수의 연기력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특히 김다미는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엄마로서의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해냈습니다. 하지만 박혜수가 연기한 요원 캐릭터의 활용은 정말 아쉬웠습니다.

이 요원은 김다미의 선택을 지켜보며 의미심장한 대사를 계속 던집니다.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 건지 보겠다"는 식의 대사들이 복선처럼 깔리는데, 정작 이 캐릭터는 허무하게 퇴장합니다. 제가 보기에는 차라리 그런 개인적인 감정선 없이 순수하게 임무만 수행하는 역할로 그렸다면 훨씬 깔끔했을 겁니다.

아이 역할의 권은성 배우도 열심히 연기했지만, 캐릭터 자체가 초반에는 너무 고구마처럼 답답하게 느껴졌습니다. AI라는 정체가 후반에 밝혀지니까 그제야 이해는 가지만, 그렇다면 초반에 좀 더 의구심을 불러일으킬 만한 연출이 필요했다고 봅니다. 너무 평범한 아이처럼 그려놓으니 답답함만 남았던 겁니다.

 

신선한 시도였지만 완성도는 부족했다

영화가 끝나고 나서 저는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건 여운 때문이 아니라 '내가 뭘 본 거지?'라는 혼란 때문이었습니다. 재난 영화로 보기엔 긴장감이 없고, SF로 보기엔 설명이 부족하고, 모성애 드라마로 보기엔 감정선이 와닿지 않았습니다.

감독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충분히 이해합니다. AI와 인간의 경계, 모성애의 본질, 생명에 대한 철학적 질문들. 하지만 이 모든 걸 108분 안에 담으려다 보니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전달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제가 어릴 때 물에 빠졌을 때 느꼈던 그 생생한 공포감, 그런 감정적 몰입을 이 영화에서는 한 번도 느끼지 못했습니다.

물론 이런 시도 자체는 의미가 있습니다. 한국 영화가 다양한 장르를 실험하는 건 환영할 일입니다. 하지만 신선한 소재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그 소재를 어떻게 설득력 있게 풀어내느냐가 중요한데, 대홍수는 그 부분에서 아쉬움이 컸습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9RQD_bQ-35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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