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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휴민트 리뷰(액션, 멜로, 첩보물)

by mongle030 2026. 2. 23.

휴민트 포스터


 

 

솔직히 처음 영화관에 들어갈 때만 해도 '베를린' 같은 냉철한 첩보 스릴러를 기대했습니다. 류승완 감독님의 전작들을 생각하면 당연한 기대였죠. 그런데 막상 2시간 동안 영화를 보고 나오니까, 제 예상과는 전혀 다른 결이었습니다. 이건 첩보물의 껍질을 쓴 멜로 액션 영화더라고요. 멜로 장면은 단 한 컷도 없는데 말입니다.

베를린과 다른, 감정에 집중한 액션

일반적으로 류승완 감독 하면 치밀한 액션과 긴박한 스릴러를 떠올리지만, 휴민트는 제 경험상 그보다 훨씬 따뜻했습니다. 블라디보스토크라는 차가운 설국을 배경으로 했지만, 인물들의 감정선은 오히려 뜨겁게 타올랐거든요. 조인성이 연기한 조 과장은 국정원 블랙 요원인데, 동남아 작전 중 자신이 약속했던 정보원을 잃으면서 깊은 딜레마에 빠집니다. "정보를 주면 탈출시켜주겠다"고 약속했지만 작전이 틀어지면서 그녀를 버려야 했던 거죠.

저는 이 설정이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이라고 봤습니다. 조 과장은 이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북한 식당 종업원 최선화(신세경)를 만나 정보를 캐내는데, 과거의 실패가 자꾸 겹쳐 보이는 겁니다. 한편 북한에서는 보위성 조장 박건(박정민)이 현지 조사를 위해 파견되고, 총영사 황치성(박해준)까지 얽히면서 각자의 목적을 가진 인물들이 한 곳에 모입니다. 제가 직접 봤을 때 이 구도 자체는 전형적인 첩보물이지만, 인물들의 선택과 감정 표현 방식은 전혀 차갑지 않았습니다.

특히 박정민의 박건 캐릭터는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작년 청룡영화제에서 화제가 됐던 그 멜로 눈빛을 여기서도 제대로 볼 수 있었거든요. 멜로 장면은 없지만 눈빛과 감정만으로 충분히 전달되는 그 절절함이 있었습니다. 신세경도 걱정했는데 북한 종업원 역할을 생각보다 잘 소화했고, 박해준은 선한 역할보다 이런 애매한 포지션이 훨씬 어울린다는 걸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배우들과 캐릭터의 싱크로율이 이렇게 좋으면 영화 몰입도는 자연스럽게 올라가더라고요.

 

류승완표 액션, 여전히 따박따박 보인다

제가 류승완 감독님 액션을 좋아하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빠르고 화려하기만 한 액션이 아니라, '뭘 하고 있는지' 정확히 보이는 액션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휴민트에서도 이 강점은 여전했습니다. 초반부 동남아 액션 신부터 중반부 박건과 여직원의 대결 장면까지, 각 동작 하나하나에 의도가 담겨 있었어요. 그냥 파바박 싸우다가 한쪽이 이기는 게 아니라, 사물을 어떻게 이용하고 상대방의 빈틈을 어떻게 노리는지가 다 보였습니다.

저는 특히 후반부 방탄 박스를 이용한 액션 신이 신선했습니다. 비주얼적으로도 새로웠고, 류승완 감독님이 항상 새로운 액션을 찾아다닌다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밀수에서 수중 액션을 시도했고, 베테랑2에서 계단 액션을 보여줬다면, 이번엔 이런 구도를 가져온 거죠. 게다가 마지막 액션 신은 약간 홍콩 누아르 느낌도 났습니다. 실제 액션이라기보다 굉장히 영화적인 구도와 연출이었는데, 이게 호불호가 갈릴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저는 호였지만요.

그런데 일반적으로 첩보 스릴러라고 하면 냉철한 수 싸움과 배신의 연속을 기대하잖아요. 솔직히 휴민트는 그런 부분이 거의 없습니다. 이야기 구조도 어렵지 않고, 인물들의 선택도 대부분 예측 가능했습니다. 착한 사람은 끝까지 착하고, 나쁜 사람은 나쁘게 나오거든요. 입체적인 캐릭터를 기대했다면 조금 아쉬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게 감독님의 의도적인 선택이라고 봤습니다. 복잡한 플롯보다 인물의 감정과 선택에 집중하려는 거죠.

블라디보스토크의 차가운 눈밭과 음산한 분위기 속에서 뜨겁게 타오르는 인물들의 감정선은 묘한 대비를 만들어냈습니다. 제가 직접 느낀 건, 이 영화가 대중적으로 접근하려고 많이 노력했다는 점입니다. 가족과 함께 봐도 이해하는 데 전혀 문제없을 만큼 쉽고, 감정선도 명확하게 전달되니까요. 베를린과 세계관은 같지만 후속작은 아니고, 굳이 베를린을 안 봐도 상관없습니다. 오히려 베를린보다 훨씬 더 감정적이고 따뜻한 영화라고 보시면 됩니다.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 과장이라는 캐릭터로 시리즈를 만들어도 괜찮겠다는 거죠. 베테랑의 서도철 형사처럼 조 과장이 매번 다른 지역에서 다른 사건을 만나는 구조요. 이번엔 감정적인 부분을 많이 다뤘다면, 다음엔 첩보물로서의 무게감을 더 실어볼 수도 있을 테니까요. 제 개인적인 바람일 뿐이지만, 한국형 첩보 시리즈로서 포텐셜은 충분하다고 봤습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4mxVTL0f4Xk&t=8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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