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미디 영화라고 하면 무조건 웃겨야 성공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최근에 ott로 <필사의 추격>을 관람한 뒤, 그 통념에 의문을 품게 되었습니다. 분명 웃음 포인트는 존재했지만, 관객들이 웃음이 나온다고 한 것이 과연 영화 본연의 힘이었는지 살짝 혼란스러웠거든요. 제주도를 배경으로 사기꾼·형사·조폭 보스가 뒤엉키는 이 추격 코미디는, 예고편에서 기대했던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결과물로 제 앞에 놓였습니다.
올드 코미디 방식의 명암
<필사의 추격>은 변장술이 뛰어난 전설의 사기꾼(박성웅), 분노 조절 장애가 있는 형사(곽시양), 중국에서 온 악랄한 조폭 보스(윤경호) 세 인물이 제주도에서 만나 벌이는 우당탕탕 소동을 그립니다. 이들은 각기 다른 목적으로 제주도에 모였지만, 하나의 사건으로 엮이며 추격전을 펼치죠. 문제는 이 영화가 채택한 코미디 방식이 2000년대 초반 한국 코미디의 전형적 패턴에 머물러 있다는 점입니다.
실수 개그(Slapstick Comedy)라고 부르는 이 방식은, 캐릭터가 의도치 않은 상황에 말려들며 연쇄적으로 오작동하는 구조를 뜻합니다(출처: 영화진흥위원회). 비행기 안에서 분노 조절 장애 형사가 옆 승객의 기침, 뒷좌석의 발차기, 물을 쏟은 아줌마의 당황스러운 손길에 연달아 반응하며 폭발 직전까지 가는 장면이 대표적입니다. 이런 장면은 타이밍과 호흡 조절만 적절히 맞춰주면 관객의 웃음을 끌어낼 수 있는 소재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 장면을 보며 "이건 20년 전 코미디에서 봤던 건데"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코미디 연출에서 템포(Tempo)는 관객의 웃음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입니다. 여기서 템포란 대사와 동작 사이의 간격, 장면 전환 속도, 배우의 리액션 타이밍을 포괄하는 개념이죠. 최근 흥행한 <파일럿>이나 <범죄도시> 시리즈가 관객을 사로잡은 이유는 단순히 소재가 참신해서가 아니라, 배우들의 연기와 편집 리듬이 현대 관객의 감각에 딱 맞아떨어졌기 때문입니다. 반면 <필사의 추격>은 배우들이 주어진 상황을 성실히 소화하지만, 그 연기가 코미디 특유의 과장과 여백을 살리지 못한 채 평이하게 흘러갑니다.
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이 영화가 연출 측면에서 명확한 한계를 드러냈다고 봅니다. 특히 중반과 후반에 각각 한 번씩 등장하는 두 장면만은 정말 훌륭했습니다. 그 순간만큼은 "이거야, 이렇게 웃겨야 하는 거지!"라는 확신이 들었거든요. 문제는 그 두 장면을 제외한 나머지가 그 수준에 미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같은 날 시사회에 동행한 제 아내도 똑같이 그 두 장면만 콕 집어 언급했을 정도로, 영화 전체의 완성도가 고르지 못했습니다.
연출과 캐릭터 설정의 한계
영화의 기본 설정 자체가 관객의 웃음 허들(Hurdle)을 낮추지 못한다는 점도 아쉬웠습니다. 여기서 웃음 허들이란 관객이 코미디 상황에 몰입하기 위해 넘어야 하는 심리적 장벽을 의미합니다. <극한직업>은 마약 조직을 감시하려 차린 치킨집이 대박 나면서 본업을 잊는 아이러니로, <6/45>는 로또 당첨 용지가 북한으로 날아가는 황당한 설정으로 관객을 단숨에 사로잡았습니다.
이런 영화들은 기본 설정만으로도 "도대체 이 다음엔 뭐가 벌어질까?" 하는 기대감을 심어줍니다.
이 세 캐릭터가 제주도에서 만난다는 점이 유일한 설정의 축인데, 제주도라는 공간이 이야기에 필연적으로 작용하지 않습니다. 제주도 특유의 문화나 지리적 특성을 활용한 장면도 거의 없고, 고기국수가 잠깐 등장하는 정도가 전부입니다. 솔직히 말하면 이 이야기는 부산이든 강릉이든 어디서든 똑같이 펼쳐질 수 있었습니다.
라는 의견도 있지만, 저는 캐릭터 설정이 코미디 장르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금 깨달았습니다. <웅남이>는 곰과 인간 사이에서 정체성 혼란을 겪는 캐릭터 설정 자체로 판타지와 철학을 동시에 건드릴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영화 역시 개그 쪽으로 치우치며 깊이를 잃었죠. <필사의 추격>도 마찬가지입니다. 박성웅·곽시양·윤경호 세 배우 모두 연기 경력이 탄탄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캐릭터가 가진 잠재력을 충분히 끌어내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저는 예수정 배우와 박종학 배우의 연기가 더 인상적이었습니다. 두 분은 코미디 캐릭터가 아닌 조연으로 등장했지만, 진정성 있는 감정 연기로 영화에 무게를 실어줬습니다. 예수정 배우가 연기한 어머니 캐릭터는 따뜻하면서도 현실적인 감정선을 유지했고, 박종학 배우 역시 자연스러운 연기로 장면을 안정시켰습니다. 반대로 주연급 캐릭터들은 코미디 상황을 '연기'하는 데 그쳤을 뿐, 관객을 웃기는 데까지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추천 대상과 현실적인 평가
그렇다면 이 영화는 누구에게 추천할 수 있을까요? 일반적으로 코미디는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 장르라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필사의 추격>은 중장년층 관객에게 더 잘 맞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2000년대 초반 한국 코미디 영화의 문법에 익숙한 분들이라면, 이 영화의 웃음 코드를 무리 없이 받아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
김재훈 감독은 <악마를 보았다>로 데뷔했지만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고(출처: 씨네21), 이번 작품 역시 상업적 성공을 장담하기 어려운 완성도입니다.
저는 데이터가 담긴 외장 하드를 카페에 두고 온 뒤, 막차 시간 직전에 미친 듯이 거리를 달렸던 경험이 있습니다. 그날 밤 제 심장은 터질 듯 뛰었고, 겨우 하드를 되찾았을 때 안도감과 자괴감이 동시에 밀려왔습니다. 영화 속 추격전이 그런 절박함을 담아냈다면, 관객은 캐릭터의 숨결까지 느낄 수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필사의 추격>의 추격은 그저 화면 위를 스쳐 지나갈 뿐, 관객의 가슴을 뛰게 만들지 못합니다.
가족끼리 가볍게 시간을 보내려는 목적이라면 괜찮은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중반과 마지막에 등장하는 두 장면만큼은 정말 웃겼다는 점만은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그 두 장면이 영화 전체를 지배했더라면, 저는 지금쯤 이 영화를 강력 추천하고 있었을 겁니다.